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고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있었던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도서관이다.
근처에 무세이온이라는 같은 연구 기관도 딸려있었다. 본관은 브루케이움, 별관은 세라피움 이라고 한다.
프톨레 마이오스 왕조의 후원으로 발전하였으며, 기원전 3세기 경 건립된 이후 고대 로마가 이집트를 점령한 기원전 30년대까지 지식과 학문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특징
사원(학예관) 근처에 세워져 서로의 영향권 내에 들도록 하였으며 도서관은 정원, 공동 식당, 독서실과 강의실, 집회실 등을 포함하고 있었으며 신간 도서의 관리와 책의 분류를 하는 부서가 존재하였다. 회랑은 파피루스 두루마리들을 보관하는 책장들로 이루어졌으며 최초로 국경에 상관없이 그 당시의 모든 서적들을 수집하여 세계의 지식을 취합한것에 대해 의의가 있으며, 장서 수집 방법에 대해선 알렉산드리아에 입항한 모든 선박을 뒤져 서적을 압수한 뒤 몇 달이 걸리든 필사본을 만들어서 원본을 보관하고 사본은 주인에게 다시 돌려주었다고 전해진다.
과거의 자료를 수집하는 것 이외에도 여행과 숙박, 급여를 제공하는 교류의 역참 역할을 했으며, 연구 기관으로서의 경험론적 기반을 바탕으로 비평 등의 철학적 사고관 또한 발달되었다. 이러한 비평 등이 활발해지며 검증된 책들은 학자들에 의해 보다 더 정확한 복사본으로 제작되었다.
보유했던 장서의 양은 학자들 사이에서도 1만 권에서 70만 권까지 다양한 학설이 존재하나, 당대의 도서관들에 비해 그 규모가 매우 방대했다는 것만은 모두가 동의한다.
파괴
고대에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파괴되었음을 말하는 기록은 다수 존재한다. 고대 로마 시절 카이사르, 아우렐리우스, 테오도시우스 황제 시대에 일련의 파괴 행위가 기록되어 있으며, 7세기 이슬람 세력이 알렉산드리아를 정복했을 때 도서관을 파괴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단, 기록의 신빙성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13세기에나 이슬람교도들이 파괴했다는 내용이 담론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18세기의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에 의하면 이슬람이 도서관을 파괴했다는 기록은 기독교의 프로파간다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게다가 각각의 자료에 기록된 파괴 정도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가장 유명한 것은 카이사르의 이집트 원정 시기에 기록된 대화재 기록이다. 플루타르코스, 겔리우스, 마르켈리누스, 오르시우스 등의 고대 역사가들은 이 당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커다란 화재가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당시 이집트의 장군이었던 아킬라스가 바닷길을 막으며 카이사르의 통신을 끊으려 하자 카이사르는 스스로 배에 불을 질렀는데, 이때 불이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번져서 큰 화재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의도적인 방화는 아니고 카이사르의 실수였다는 말이다. 하지만 플로루스와 루카누스는 조금 다르게 기록하고 있는데, 당시에 화재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로 불이 일어난 곳은 해변의 일부 가옥들 뿐이었다고 한다. 보다시피 딱히 뚜렷한 원인을 알수가 없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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