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썸네일형 리스트형 민주주의에 꽃인 투표를 1430년에 실시한 세종대왕 어리석은 백성이 이르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끝내 제 뜻을 능히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를 위해 불쌍히 여겨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니 사람마다 하여금 쉬이 익혀 날마다 씀에 편안케 하고자 할 따름이다. (훈민정음 서문의 일부) 조선시대에도 국민투표가 있었습니다. 세종은 토지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는 새로운 세법인 공법을 추진하면서 최종적으로 백성들의 찬반 의견을 묻고자 했습니다. 투표 3년 전인 1427년 세종은 창덕궁 인정전에 나가 과거시험 문제를 내면서 공법에 대한 견해를 묻는 등 세법을 확정하기 전에 미리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했습니다. 그리하여 1430년 3월부터 5개월간에 걸쳐 역사상 최초의 국민투표가 실시됐습니다. 세종은 "백성이 좋지 않다면 이를 행할 수 없다"고 천명했고, 백성 1.. 더보기 대한제국의 의회 중추원 아관파천 이후 환궁한 고종에게 독립협회는 입헌군주제를 주장하였고 고종이 이에 합의하면서 탄생한 한반도 최초의 근대식 의회였습니다 고종과 독립협회는 일본이라는 요소 하나 때문으로도 공존하기 어려웠으나, 외국 눈치를 보던 고종과 이를 기회로 여론몰이를 하면서 정권을 획득하려고 했던 독립협회가 암묵적 대립을 이어갔습니다 독립협회와 대한제국 황실 및 정부가 보였던 입장 차이는 다음과 같습니다 체제에서 독립협회는 영국식 입헌군주제를, 정부와 황국협회는 독일식 외견적 입헌군주제를 주장했습니다. 독립협회는 상대적으로 영향력이 높고, 민심이 협회에 우호적인 서울에 한정하여 대표를 선출하는 상원만을 구성할 것을 주장했습니다.반면, 정부와 황국협회에서는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하원도 복설할 것을 주장했습니다. 중추원 의원.. 더보기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