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대까지 큰 복을 누리리라 경복궁(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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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만대까지 큰 복을 누리리라 경복궁(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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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이라는 이름은 정도전이 지었습니다.
태조 이성계가 궁궐의 이름을 지어 왕조가 만대까지 빛나도록 하라는 명을 받자 즉석에서 지었다고 합니다.

경복궁은 조선왕조의 법궁입니다 .
법궁이란 궁궐중 으뜸인 궁궐을 의미하는것입니다.
경복궁을 제외한 나머지 궁궐들은 이궁이라 불렀습니다.

경복궁은 법궁답게 태조가 조선을 건국하고 한양으로 천도를 하면서 가장 먼저 지어진 궁궐입니다.

현재의 모습은 임진왜란으로 불에탄 후 200여년간 방치되다 흥선대원군이 재건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것입니다.
임진왜란 전의 경복궁과는 차이가 있는 모습이라고 합니다.

조선 초기의 경복궁은 최대 5000칸까지 서서히 확장 되었고
조선 후기 재건된 경복궁은 애초에 7400칸이 였습니다.

조선초기 경복궁은 근정전에 청기와를 얹었다거나 세종이 왕자시절 2층에서 잠을자다 병이났다라는 기록들을 보았을때 초기 경복궁이 더 화려했을 수도 있지만 서서히 확장되었고 최대칸이 5000칸 이라는 점에서 흥선대원군에 의해서 재건된 경복궁이 규모면에서는 훨씬 웅장하고 거대하다고 볼수 있습니다.
경복궁의 전각들을 알이보겠습니다.

먼저 경복궁을 감싸고 있는 궁성 입니다.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입니다


사진 출처 노주석

경복궁의 정문입니다. 처음에는 사정문이라 불렀다는 말이 있지만 기록에는 사정문이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습니다그러다 1425년(세종 7년) 광화문으로 개칭했습니다.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후 그대로 방치되었다가 1864년(고종 1년) 중건했으나, 일제가 조선총독부를 짓기 위해 1927년 건춘문 북쪽으로 이건한 후 6.25 전쟁을 거치면서 문루가 소실되었습니다.
현재의 광화문은 2010년 8월 15일 준공된것입니다.

경복궁의 동문인 건춘문입니다

조선후기 건춘문의 모습


경복궁의 동문입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문루가 있으며, 왕족·외척·상궁들이 출입하던 문입니다.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뒤 흥선대원군이 중건하면서 1865년(고종 2년) 12월 25일 상량했습니다.

경복궁의 서문인 영추문 입니다

경복궁의 서문입니다. 연추문(延秋門)이라고도 한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문루가 있으며, 일반 관원들이 출입하던 문입니다.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뒤 흥선대원군이 중건하면서 1865년(고종 2년) 10월 25일 상량했습니다. 현재 영추문은 1975년 복원된것입니다.

경복궁의 북문인 신무문입니다

신무문

경복궁의 북문입니다. 태조가 창건할 때는 없었으나 1443년(세종 15년) 궁성의 사대문을 맞추기 위해 건설했습니다. 다만 풍수지리적인 문제 때문에 자주 닫혀 있었습니다. 1865년에 중건되 현재에 이릅니다.

궁성을 수비하는 망루인 동십자각,서십자각입니다

동십자각


동십자각은 궁성을 수비하는 망루로서는 경복궁에 현존하는 유일한 전각입니다. 7단으로 이루어진 장대석 기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누각이 세워져 있습니다. 1867년(고종 4년) 지어졌으나 1924년 도로를 확장할 때 궁장을 헐면서 길 한복판에 섬처럼 놓이게 되었습니다.

서십자각은 1866년(고종 3년) 무렵에는 이미 완공된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초반에 전차 통행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일제가 헐었습니다.

다음은 외조 입니다
(정전권역)
경복궁의 중문인 흥례문 입니다.

광화문을 지나면 나오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문입니다. 1395년(태조 4년) 지어졌으며 1426년(세종 8년) 홍례문이라 했다가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것을 1867년(고종 4년) 중건하면서 청나라 건륭제의 이름인 홍력을 피휘하여 흥례문으로 개칭했습니다. 1916년 일제가 조선총독부를 건설하면서 철거되었다가 85년 뒤인 2001년 10월 26일 복원되었습니다.

궐내각사 정문 유화문 입니다

경복궁 서남쪽에 있는 궐내각사로 가는 정문이었습니다.흥례문 일곽은 정전 근정전 영역과 바로 붙어있었기 때문에 조회뿐만 아니라 국문이나 교서 반포 등 여러 중요한 행사들이 이루어진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궐내각사에서 근무하던 관리들이 원활히 움직일 수 있는 문이 필요했고 유화문이 바로 그 역할을 했습니다.

근정전의 정문 근정문입니다

근정전의 정문입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건물로 1867년(고종 4년) 중건되었으며 일곽의 행각과 함께 1985년 1월 8일 보물 제812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조선 초기의 임금들은 여기에서 즉위식을 거행한 다음 근정전의 옥좌에 앉아 문무백관의 하례를 받았습니다.

경복궁의 정전 근정전 입니다

경복궁의 정전으로, 국가적인 대례를 거행하던 장소입니다. 다포식 건축으로는 현존하는 것 중 국내 최대 규모이며, 2단의 석축기단 위에 정면 5칸, 측면 5칸의 2층 전각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천장에 있는 금박 입힌 2마리의 목조 용 조각의 발톱이 7개인 것이 특징입니다. 1395년(태조 4년) 건설되었다가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것을 1867년(고종 4년) 중건했습니다. 일제가 조선총독부를 지을 때도 철거당하지 않았으며 1985년 1월 8일 국보 제223호로 지정되었습니다.

(편전구역)
사정전,만춘전,천추전 입니다

사정전

왕의 신하들과 함께 정사를 돌보는 편전으로 사용하던 정면 5칸, 측면 3칸의 건물입니다. 내부의 바닥이 마루였기 때문에 주로 여름에 사용했습니다. 1395년(태조 4년) 지어진 뒤 1553년(명종 8년)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중건했지만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으로 모두 전소되었고, 이후 1867년(고종 4년) 중건되어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전각의 사방이 벽 없이 창과 문으로만 된 점이 특징이며, 내부의 어좌 위에는 운룡도가 있습니다.

만추전
천추전

만추전은 사정전의 동쪽에 자리한 정면 6칸, 측면 4칸의 부속 전각입니다. 온돌이 시설되어 있어서 주로 봄에 사용했다. 그 때문에 궁궐의 온돌 시설을 살펴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곳이었습니다. 전각이 세워진 뒤 불탔다 중건되는 과정은 사정전과 동일하나 만춘전은 한국전쟁 때 폭격으로 소실되어 주춧돌만 남은 적이 있었습니다. 1988년 원 자리에 건물이 복원되었습니다.

천추전은 사정전의 서쪽에 자리한 정면 6칸, 측면 4칸의 부속 전각입니다. 만춘전과 마찬가지로 내부에 온돌이 시설되어 있어서 주로 가을과 겨울에 사용했습니다. 1452년(문종 2년) 5월 14일 문종이 37세를 일기로 승하한 곳이기도 합니다.

(궐내각사 권역)
수정전 입니다

수정전

근정전 서쪽에 자리한 전각입니다. 월대 위에 있는 정면 10칸, 측면 4칸으로 된 꽤 큰 건물로, 궁궐에 부속된 관청이 밀집한 궐내각사 권역의 중심이었습니다. 세종 때는 집현전이 있던 곳이었으나,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후 1867년(고종 4년) 중건했고, 고종 때는 군국 기무처와 내각이 이곳에 있었습니다.


임진왜란 이전 경복궁 건물 배치도 입니다


上에서는 궁성과 외조를 다루었습니다

中에서는 (내조) 침전권역,연침권역,동궁권역을 다루겠습니다

下에는 내전권역,빈전권역,건천궁 권역 철거된 건물들을 다룰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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